소설

《현장에 개미가 산다》

info38751 2026. 6. 23. 17:26

: 현장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평범한 사람. 마음은 차분한데 입은 가끔 먼저 나감.
꼰대 소장: “내가 왕년에 말이야”로 모든 문장을 시작하는 현장 소장.
안전부장: 주식으로 1억 날린 뒤, 안전보다 손절선에 더 예민해진 남자.

1화. 안전모보다 무거운 손실

아침 7시 30분.

현장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꼰대 소장이 커피믹스를 젓가락으로 저으며 “요즘 애들은 말이야”로 하루를 열 텐데, 오늘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전화를 벗으며 말했다.

“소장님,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하십니까?”

꼰대 소장은 신문을 펼친 채 대답했다.

“조용한 게 아니라 품격 있는 거다. 현장은 말이야, 소음보다 침묵에서 사고가 난다.”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반박하면 30분짜리 훈화가 시작될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안전부장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얼굴이 허옇다.
눈 밑은 검고,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그 핸드폰 화면은 빨간색이 아니었다.

파란색이었다.

심하게 파랬다.

안전부장은 힘없이 의자에 앉더니 중얼거렸다.

“끝났다…”

나는 순간 사고가 난 줄 알고 벌떡 일어났다.

“어디 다쳤습니까?”

안전부장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내 계좌가.”

꼰대 소장이 신문을 접었다.

“또 주식이냐?”

안전부장은 입술을 떨었다.

“반도체는 나라의 미래라면서요…”

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미래가 네 계좌까지 책임진다고는 안 했다.”

나는 웃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전부장은 그걸 봤다.

“웃냐?”

“아닙니다. 안면 근육 점검 중입니다.”

안전부장은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1억 날렸다.”

사무실 공기가 멈췄다.

커피포트 소리도 멈춘 것 같았다.
사실 안 멈췄는데, 분위기가 그랬다.

꼰대 소장이 조용히 물었다.

“1억을… 한 종목에?”

소장은 눈을 감았다.

나는 괜히 창밖을 봤다.
작업자들이 안전모를 쓰고 이동 중이었다.
안전부장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오늘부터 현장 안전관리 강화합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요?”

“내 계좌처럼 무너지는 건 하나로 족합니다.”

그날 오전 TBM은 역대급으로 길었다.

안전부장은 화이트보드에 크게 썼다.

‘추락 금지’
‘끼임 금지’
‘충동매수 금지’

작업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부장님, 세 번째는 작업 안전하고 무슨 관련입니까?”

안전부장은 눈을 부릅떴다.

“마음이 무너지면 발도 미끄러진다.”

꼰대 소장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

나와 작업자들은 동시에 눈을 감았다.
이제 시작이었다.

소장은 정확히 23분 동안 왕년 이야기를 했다.
1998년, 2008년, 2020년, 그리고 본인이 커피믹스를 세 봉지 넣어도 잠이 안 오던 시절까지.

그 사이 안전부장은 계속 핸드폰을 봤다.

“반등한다… 반등한다… 반등…”

그때 알림이 울렸다.

안전부장의 얼굴이 더 파래졌다.

나는 물었다.

“또 빠졌습니까?”

그는 조용히 안전모를 썼다.

“오늘부터 내 별명은 안전부장이 아니다.”

“그럼요?”

“손절부장.”

점심시간.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먹는데, 안전부장이 고기만 노려보고 있었다.

“왜 안 드십니까?”

“이 제육도 나보다 손실률이 낮아 보인다.”

꼰대 소장이 밥을 비비며 말했다.

“주식은 말이야, 기다림이다.”

안전부장이 눈을 번뜩였다.

“그럼 버티면 됩니까?”

소장이 말했다.

“아니. 내가 기다리라고 했지, 버티다 죽으라고는 안 했다.”

안전부장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소장님은 주식 잘하십니까?”

소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주식 안 한다.”

“왜요?”

“내가 사면 떨어질까 봐 국가 경제를 위해 참는다.”

나는 밥을 뿜을 뻔했다.

오후 작업 점검 때였다.
안전부장이 작업자들에게 소리쳤다.

“위험요소 보이면 바로 보고하세요!”

그때 한 작업자가 말했다.

“부장님, 저기 위험요소 있습니다.”

“어디?”

작업자가 안전부장 핸드폰을 가리켰다.

“그거 계속 보시면 위험합니다.”

모두가 웃었다.
안전부장도 잠깐 웃었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맞다. 오늘은 계좌보다 현장부터 지킨다.”

그 말은 제법 멋있었다.

꼰대 소장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현장은 말이야, 사람이 먼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드디어 정상적인 말이 나왔다.

그런데 소장이 바로 덧붙였다.

“그리고 커피믹스는 두 봉지가 기본이다.”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퇴근 무렵, 안전부장이 내게 다가왔다.

“야.”

“네.”

“내일 반등할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면 재미없고, “오릅니다”라고 하면 책임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가장 현장다운 대답을 했다.

“일단 내일도 안전모는 쓰셔야 합니다.”

안전부장은 한숨을 쉬었다.

“맞다. 계좌는 머리 아파도, 머리는 깨지면 안 되지.”

그날 안전부장은 처음으로 핸드폰을 끄고 퇴근했다.
꼰대 소장은 마지막까지 사무실 불을 끄며 말했다.

“오늘 교훈은 이거다.”

나는 물었다.

“뭡니까?”

소장이 엄숙하게 말했다.

“주식도 현장도, 떨어지는 건 조심해야 한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진짜 맞았다.